인간의 증명
사실 이 책이 한국 드라마 로열패밀리의 원작이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 드라마는 보지 않았을뿐 아니라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는 편견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잠복]이라는 책을 보고 예전 작가들의 역량을 그냥 가볍게 넘겨서는 아니된다라는 교훈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작가들의 글쓰는 감이 너무나도 좋아 그 느낌을 무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오판임은 말할것도 없는 명백한 결론이었다.
이 책은 딱 한번 끊어 읽었다. 요즘에 나오는 책들처럼 미친듯이 두꺼움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두께는 있는데 내가 너무 늦게 읽기 시작한 탓이었다. 자정 넘어 읽기 시작한 책은 멈출줄을 몰랐고 내일의 일을 기약하면 덮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역시 밤늦게 다시 펼쳐 들었지만 끊지 못하고 새벽까지 내쳐 읽어서 끝을 보고야 잠이 들었다. 그만큼 내용이 빨려들게 했다.
흑인 남자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있는 이야기. 스릴러도 범죄소설도 그렇다고 미스터리도 추리로도 딱히 규정할수 없는 이 책은 그냥 좋은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일본에 온 흑인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칼에 질린채 죽음을 맞이한다. 대체 이 남자는 무엇때문에 이 먼곳까지 와서 죽음을 당하게 된것일까. 그의 흔적을 뒤쫓던 경찰은 아주 낡은 밀짚모자를 하나 발견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그의 가족과 연결하기 위해 미국에도 연락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미국과 일본 두곳에서 전개가 된다.
한 사건을 다루는 일본의 경찰과 미국의 경찰. 그들 둘의 아주 미묘한 관계는 가장 뒷장을 보아야만 알수 있다. 중간에 미군 이야기가 나왔을때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나의 눈썰미 부족이다. 책을 많이 보아온 사람들이라면 언듯 알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이 사건과 더불어 다른 하나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부잣집 아들과 그의 여자친구 이야기. 이 이야기가 왜 뜬금없이 나오나 하고 생각도 들지만 이 둘이 나중에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그것을 없던 일로 덮어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잘나가는 유명인사는 엄마도 흑인 사건과 맞물리게 된다.
따로따로 떨어진 이야기들이 착착 자리를 들어 맞아 들어가는 느낌은 퍼즐을 한조각 한조각 맞춰나가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또는 톱니바퀴 여러개를 자기 자리를 맞추는 것과도 유사하다. 자신의 자리에 딱 맞아 떨어지는 그 쾌감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그런 것이리라 생각이 되어진다. 보통 일반적인 소설들이 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이야기가 때로는 여러개의 이야기가 나열되며 그것이 중반 이후로 가면서 하나하나 맞춰 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을때쯤 다른 사건 하나가 터지면서 그쪽으로 연결되고 또 다른 사건이나 증거로 인해서 계속 연결되는 본문에서도 표현하고 있듯이 가느다란 실 하나를 겨우 잡고 가는 그런 느낌이다. 그러다가 그 증거가 불충분해지면 그 끈이 끊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누가 딱히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이 사건을 풀어가는 일본의 경찰이 주인공이라고 하면 그의 뒤를 다라 졸졸졸 쫓아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 느낌이 묘한 느낌을 준다. 약간의 초조함도 느껴지고 범인이 증거가 안 잡히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왜 이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 졌는지 이해가 될것도 같았다. 일본 대중소설의 신기원을 이룩했다고 광고하는 이유도 알겠다. 그의 작품을 이제서야 알게 되어서 미안함도 느꼈다. 증명시리즈는 검은숲에서 삼부작으로 펴낸다고 알고 있다. 인간의 증명으로 시작한 나며지 증명 시리즈에도 관심이 생겼다. 인간의 증명과 야성의 증명 그리고 청춘의 증명까지. 줄기차게 읽어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츠지무라 미츠키. 나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처음 이 이름을 '츠나구'라는 작품을 통해서 보고 계속 관심 가는 작가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4편의 단편이 모인 이야기. 죽은 자들이 나오지만 무섭기보다는 따뜻한 이야기. 이 작가라서 그렇게 쓸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다음책인 '오더메이드살인클럽'을 보고 나선 이런면도 있었네 하고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보았던 전작과 비교해서 죽음을 다루고 있는 건 같았는데 따뜻함이 조금은 차가워졌달까. 아무래도 십대들의 이야기를 그려서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 따뜻함과 재미가 함뿍 담겨있다. 역시 내가 알고 있던 그 작가가 맞다. 네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단편같은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장편으로 아우르는 효과가 뛰어나다. 그러면서도 개개인의 설정을 깨알같이 해두어 전혀 헷갈릴 일 없이 해 두었고 앞쪽에 네커플의 이름을 결혼식 입구에서처럼 신랑 누구 신부 누구 이런식으로 표기해 두고 있다. 또한 각각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써두어 그 시각으로 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함께 두었다. 오랜만이다. 이런 행복한 느낌. 장르소설이 아니면서 장르소설답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재미를 놓치지 않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고 이런 발상은 어떻게 해서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는지 한껏 궁금해졌다.
혼지슈와 다이안나리. 원래 일본어 책 제목이다. 제대로 읽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발음대로 읽으니 그렇게 되었고 히라가나는 제대로 읽었으니 한자가 맞게 읽혔는지는 모르겠다. 한자어로 本日 아마도 본래의 날. 그날을 일컫는것이 아닐까. 그리고 다이안. 大安 크게 위안이 된다 라는 뜻으로 일본에서는 대길한 날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물론 그날에 결혼식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고. 이 글의 배경은 호텔이다. 한 호텔의 네개의 룸에서 벌어지는 결혼식. 한 시간 간격으로 세개의 결혼식이 있고 세시간 후에 마지막 이브닝 웨딩이 있다. 물론 이 결혼식을 치루어지지 못하고 앞서 세개만 치루어졌지만.
결혼식이라고 하면 일본이나 우리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물론 한국에서는 요즘 작은 결혼식 하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평생에 한번뿐인 날이라 생각되어 그날에 쓰이고 있는 돈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이긴 하다.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이 호텔에서 하면 다른 곳보다 비싸긴 하지만 이쁘고 좋은 곳이라 여겨져서 많은 신부들이 오고 더군다나 길일이라 하여 그날에 몰리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11시반에 결혼을 하는 신부와 신랑. 신부는 특이하게도 쌍둥이이다. 12시반에 올려지는 결혼식. 신부가 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웨딩플래너가 정말 힘들게 일을 할수 밖에 없었던 그녀. 1시반에 올려지는 결혼식. 그녀에게는 그녀를 좋아하는 꼬마 조카가 있다. 과연 이 세개의 결혼식에서 주인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 일들로 엮여질 것인가. 이 세커플에 마지막으로 두번째 신부의 결혼식을 담당한 웨딩플래너까지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그려낸다. 꼬마는 꼬마답게 그리고 쌍둥이는 각자의 눈으로 바라본 그날의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그려낸다.
원제목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의미의 제목이 붙여졌다.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만 보이는 달이 실은 가까이서 보면 구멍이 슝슝 뚫려 못 생겼다는 그런 걸 생각하고 멀리서 보면 정말 아름다운 결혼식도 실상 가까이에서 그 내면을 속 내용을 안다면 정말 말로 할수 없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숨겨 있다는 그런 생각으로 붙여진 듯 하다. 제목과 이야기의 합이 아주 딱 들어 맞는다. 원제목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도 많지만 이 경우는 바뀐 제목이 책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고나 할까.
뒤에 역자의 이야기를 보면 각각의 사람들이 바뀔때마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말하는 식으로 번역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 노력이 빛을 발했다. 아이는 아이답게 말을 하고 일을 하는 사람은 그들 나름대로의 똑 부러짐을 나타내고 신부는 그 날의 이야기를 잘 말하고 있어서 읽는 사람이 힘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세심한 부분으로 말미암아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수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2년후에라는 식으로 에필로그를 담고 있다. 이 책이 드라마로도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일본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책에서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된 부분이 영상으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고싶었다.
하나 더, 이 책에서는 네커플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나는 세커플밖에 언급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커플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들은 이브닝 웨딩이어서 처음부터 나오지 않아도 됐는데 그 신랑은 초반부터 나오고 있다. 추리소설도 아니지만 은근한 매력을 숨기고 있는 츠지무라 미츠키의 책. 나는 계속 이 작가를 관심있게 볼 것 같다.
워드메이트1
중 고등학생을 위해서 필요한 단어책을 생각해보라고 하면 누구든지 단어가 빽빽한 그런 책들을 생각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법책보다도 더 인기가 없고 재미가 없는 것이 단어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할수가 없고 안 볼수가 없는 것이 또한 단어책이다. 왜냐하면 영어에 있어서 문장을 해석하려고 하면 그 문장에 나오는 단어를 알아야 하고 단어의 뜻을 알아야 그 문장이 제대로 해석이 되고 그래야만 그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단어책을 사야하고 단어를 외워야 하고 그게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단어는 외우기 힘들고 외워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더더군다나 그게 문장에서 쓰이면 때에 따라서 달라지는 단어 뜻으로 인해서 복잡해지고 결국 해석은 산으로 가고 나는 그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다. 시중에 여러가지 단어책들을 보아왔다. 추천도 많이 해주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책장에서 단어책은 어느 순간 먼지 쌓인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보통은 독해집에 단어장이 조그맣게 따로 별책부록 식으로 나오거나 아니면 문법책에서도 본문에 나온 단어들을 모아서 단어집을 만들어 두었고 그것을 활용해서 그 단어들이라도 외우자고 시키게 되었다.
몇년전엔가는 아주 쇼킹한 방법으로 단어를 외울 수 있게 되어 있는 책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어를 소리나는대로 발음하고 그것은 한국말로 바꾸어 뜻과 음을 같이 외우는 식이었다. 제대로 기억은 안나지만 가령 수프가 뜨거워서 놀랐징.. 하면서 서프라이징은 놀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뭐 이런식이랄까. 아뭏든 그 방법은 시트콤에 나올 정도로 웃기기는 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이 책 워드 메이트는 이름 그대로 단어를 친구삼아 볼수 있는 책이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에 깜짝. 물론 일반 단어책에 비하자면 그리 두껍지도 않으나 재미있게 볼 책 치고는 두꺼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용을 보니 그만큼 알참에 또 한번 깜짝 놀랐다. 정말 이 책만, 이 책에 있는 단어만 다 외운다면 고등학교 수능까지 문제없이 죽죽 달릴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좋은 단어들의 집결지이다. 옹 합해서 5천 여 어휘가 들어 있다고 하니 오히려 그 많은 단어가 들어가기에는 책이 너무 얇은 거 아닌가 이 책에 그만큼 다 들어 있어?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책은 총 합해서 12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인체를 비롯해서 생활과 도덕 또는 여가 이런식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각 분야별로 내키는 부분만 골라서 공부를 할수도 있다. 처음부터 착실히 이런건 단어책에서는 절대 필요없는 말이다. 또한 아주 재미있게 그린 일러스트로 인해서 그림만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림을 보면 뜻이 나와 있고 그러면서 옆에 있는 단어를 볼수 있게 된 구성이다.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각각의 캐릭터를 구축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흑백 일색이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컬러감을 주어 더욱 밝아보이는 느낌을 주는 것도 긍정적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처음 공부하려면 칼과 가위가 필요하다. 제일 앞 쪽 책날개에 잘라서 쓸수 있는 단어암기용 책갈피가 있기 때문이다. 한 페이지마다 세개씩 들어 있는 단어에 맞추어 세개의 구멍을 뚫어서 단어를 보고 그 뜻을 맞출수 있게 되었다. 다른 책에서도 본적이 있어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좋은 생각이다. 단어의 뜻을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주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수능에서 자주나오는 유형의 문장을 적어 두었고 또한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을 함께 알려주고 있어서 하나의 단어를 알면 연상해서 다른 단어들도 같이 생각나게 해 두었다. 그리고 한 챕터마다 마지막부분에는 확인할수 있는 문제도 있고 그것을 확인할 정답은 따로 찢어서 그것만 보고 다녀도 외울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전국의 영단어로 고생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꼭 보라고 이 책만 있으면 문제없다고 권해주고 싶다. 참고로 이 책의 뒷부분에는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문법도 소개해 주고 있다. 한권으로 정말 알찬 구성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