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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타인의 고통 – 수전 손택이 말하는 공감, 이미지, 윤리에 대해 말하다.

by 대빵부자 2025. 7. 27.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를 접합니다. 뉴스 속 전쟁 사진, 난민의 얼굴, 재난 현장, 혹은 고문과 폭력의 장면까지.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은 과연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혹시 반복되는 참상의 이미지가 오히려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공감을 마비시키는 건 아닐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f Others)』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서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1. 수전 손택은 누구인가?

수전 손택은 미국의 문화비평가이자 작가, 사진학자, 철학자로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입니다.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관하여』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예술, 정치, 윤리, 대중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독창적인 사유를 제시해 왔습니다.

『타인의 고통』은 그녀의 후기작 중 하나로, 2003년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한 시의성을 갖는 책입니다.

2. 책의 핵심 질문: 이미지는 고통을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깊습니다. “이미지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혹은,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가?”

수전 손택은 이 질문에 대해 단순히 '그렇다'거나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역사와 사례, 사진, 전쟁 보도, 대중문화 등을 인용하며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소비하는 사회의 양면성**을 분석합니다.

3. 전쟁 사진의 역사와 영향력

손택은 특히 전쟁 사진에 주목합니다. 19세기 중반 크림 전쟁과 남북전쟁 당시의 사진부터 베트남 전쟁, 보스니아 내전, 9.11 테러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참상을 담은 이미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폭력의 현실이 어떻게 기록되고, 어떻게 왜곡되며, 어떻게 소비되는가를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 당시 전 세계에 퍼진 ‘네이팜탄 소녀’ 사진은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손택은 질문합니다. “그 이미지를 본 사람들은 정말 전쟁의 고통을 체감했는가, 아니면 일회적인 충격에 그쳤는가?”

4. 공감의 마비: 이미지의 역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매일 수백 개의 참혹한 이미지를 접합니다. 수전 손택은 이 점을 우려합니다. 반복적인 충격 이미지가 오히려 우리의 공감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지만, 점점 우리는 고통에 '익숙해지고', 무뎌지고, 마침내 무관심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공감의 마비(Numbing of Empathy)’ 현상입니다.

이미지는 한순간의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만, 그 감정을 지속시키거나 행동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고통의 이미지를 스크롤하고 넘기며,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5. 고통의 계층화와 거리감

손택은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어떤 고통은 더 중요하고, 어떤 고통은 덜 중요하다’는 식의 **고통의 계층화(Hierarchy of Suffering)**를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나라에서의 테러는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만, 다른 나라의 인권 탄압은 거의 주목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가까운' 혹은 '우리에게 중요한' 고통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결국 타인의 고통을 차별하고, 도구화하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손택은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윤리적 책임이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6. 진정한 공감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고통』은 단지 이미지 비평서가 아닙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떻게 공감할 것인가’,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윤리적으로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진정한 공감은 단순한 감정적 동요가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의 입장에서 상상하고, 이해하며, 그 고통을 **실질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연결**하려는 태도입니다.

손택은 말합니다. “이미지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 있다. 그 고통에 다가가려면, 우리는 단순한 시청자에서 행동하는 존재로 바뀌어야 한다.”

7.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며 무엇을 느껴야 할까요? 동정? 죄책감? 충격? 분노?

손택은 그런 감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라고 말합니다. 이미지를 바라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 ■ 이 고통은 왜 발생했는가?
  • ■ 내가 이 고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충분한가?
  • ■ 나는 이 고통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를 보다 능동적인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8. 현대 사회와 윤리적 시선의 회복

『타인의 고통』은 단지 과거의 전쟁이나 사진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미디어 시대에 우리가 꼭 읽어야 할 현대 철학서입니다.

SNS, 뉴스, 유튜브, 각종 콘텐츠에서 넘쳐나는 참상의 이미지들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무언가를 ‘본 것’만으로 안심하려는 경향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손택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고통을 보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그것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윤리적 존재로서 우리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9. 마무리 – 타인의 고통, 나의 책임

『타인의 고통』은 인간 존재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도덕적 질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타인의 고통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고통의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는 법, 고통을 실제 존재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용기, 그리고 그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고 책임을 생각하는 성숙한 인간의 자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아직 인간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