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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하느님의 보트, 살아줘서 고마워요, 쇼팽 발라드 제4번

by 대빵부자 2023. 10. 17.

하느님의 보트

여러 책을 섞어 놓고 나라별로 나누어봐라 하면 다는 모르겠지만 대륙별로는 나눌수 있을 듯. 한국책과 일본책을 섞어 놓고 나누어라 해도 찾을 수 있을 듯. 일본책만 가져다 놓고 저자는 가리고 가오리의 책을 찾아라 해도 아마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그녀의 글에서 풍기는 향은 강렬하다. 사실 그녀의 책의 내용이 강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오히려 전혀 그렇지 않다. 잔잔하다. 담백하다. 별로 튀는 내용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흘러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지루하다고 하기도 하고 간혹 남자들은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게 가오리의 글은 그녀만의 특색이 있다. 잔잔하지만 그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들이 워낙 특색이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다. 보통의 가족들 속에서 튀는 언니, 일반적인 부부 같지만 남편은 동성 애인을 가지고 있고 행복한 커플 같지만 숨겨진 애인이 있다거나. 그냥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무슨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같지만 가오리의 글 속에서 이 주인공들은 아주 잘 녹아 있다. 그냥 그 모습 자체가 현실인 것 처럼, 살다보면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만날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게 그녀의 글은 흘러간다.

 

이책에서도 이야기는 아주 평범하다. 엄마인 요코와 딸인 소우코와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냥 그 이야기가 십여년에 걸쳐서 주욱 이어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끝난다면 이 책은 가오리의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엄마와 딸이 둘다 약간은 특이하다. 엄마는 옛연인이자 딸의 아빠를 잊지 못하고 그를 찾아서 계속 이사를 한다. 그리고 그 딸은 또래와는 다르게 엄마를 너무 잘 이해하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애어른이라고나 할까.

 

시작부분에서는 같은 접점에 있던 그들 모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행보를 보인다. 언제까지나 같이 행복하게만 살것 같던 모녀는 딸이 변하면서 멀어진다. 같은 곳에 있던 두 점이 서서히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같이 있게 되지 않는 각으로 넓어지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딸이 굉장히 나쁘다거나 어긋난 것 처럼 보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딸이 현명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오히려 더 일찍 자신의 길을 찾아서 떠났다면 엄마가 더 빨리 현실을 자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무리 일찍다 하더라도 딸의 나이가 십대이니 그녀 또한 무엇을 할수 있었을까 그게 최선이지 싶다.

 

1,2년을 주기로 이사다니는 엄마와 딸. 새로운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곳에 녹아들지도 않는 삶. 그 엄마를 보면서 나는 내가 겹쳐져서 보였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꽤 오래동안 살아 온 곳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녹아들지도 않았다.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도 없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싫어하지 않는 요코처럼 나도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익숙한 것이 좋다. 여태껏 알아온 친구가 좋다.

 

요코는 아마 소우코가 있었기때문에 살아왔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딸은 남편이자 동료이자 친구이자 엄마이자 가족이자 딸이었던 것이다. 밤 늦게 일하는 엄마를 위해 이부자리를 깔아 놓고 인형들과 함께 잠들며 엄마를 기다리는 딸.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자신이 씨리얼로 아침을 챙겨 먹고 나이가 좀 더 들어 엄마의 아침까지도 챙겨놓고 학교를 가는 딸. 이렇게 착한 아이가 요즘에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착한 딸이다. 내가 보는 소오코는.

 

새 학교 가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와 얼마 안되어 또 헤어져야 할때 그런 감정을 감추고 엄마에게 쉽게 동의하는 그런 아이가 있을까.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걸 찾아서 그 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해서 결국 해 내는 그런 딸. 내게 이런 딸이 있다면 아마 업고 다니지 싶다. 아쉽게도 내게는 부모님밖에 안 계시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봤을때도 나는 소우코같은 딸은 못 되는 듯 하다. 오히려 손이 많이 가서 늘 걱정을 해줘야 하는 그런 딸일뿐.

 

그들 모녀가 움직여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옛사랑을 찾기 위해서. 엄마의 하나뿐인 사랑을 찾기 위해서. 한곳에 익숙해지면 그사람을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한 요코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십여년이 흘러 이제는 어린티를 벗어버린 소오코가 말한다. 그럼 익숙해지지 않으면 찾을 수 있냐고. 요코는 단지 무서웠던 것이 아닐까.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발버둥치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지지 않는 자신의 사랑.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계속 자신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안정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혼자서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요코.

 

어렸을때 엄마가 하던 말씀이 있다. 어딜 가서 엄마를 잊어버리면 자꾸 찾아다니지 말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면 엄마가 찾아 온다고. 요코가 이 말을 알았다면 그녀는 아마도 훨씬 일찍 자신의 사랑을 찾을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딸. 두 사람의 입장이 다 이해되는 글. 작가가 옆에서 조곤조곤 말해주는 느낌으로 읽으면 훨씬 좋은 글. 한번 읽고 또 나중에 두고 보게 되는 그런 글. 그때는 아마 또 다른 느낌으로 이 모녀를 이해할 것만 같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이 책의 제목을 제일 처음 봤을때 든 생각.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제목이다... 알고 보니 얼마 전 읽었던 조창인의 소설과 비슷하다. 그 제목은 살아만 있어줘. 도대체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길래 이렇게 살아달라고 주장하는가. 물론 내용은 전혀 같을 수가 없다. 한권은 그냥 허구의 이야기들을 쓴 소설이고 한권은 사실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것은 현실이고 지금은 살아내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사실에 더 감동을 많이 받기 마련이다. 하물며 사랑이야기야 더 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전문 작가가 아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피디가 쓴 책이고 그가 여러 작품을 만들면서 만나왔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생각들을 책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저자의 작품은 유명하다. 해외에서 상도 받았을만큼 좋은 다큐를 만든다. 상을 받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에는 무언가 뭉클하는 것이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사랑' 시리즈가 그러하다. 그는 죽어가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폈던 남편의 이야기를 그린 '너는 내운명'이라던가 장애인에 암환자이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을 조금도 멈출수가 없었던 '풀빵엄마' 라는 작품들도 유명하다. 병으로 인해서 모든 뼈가 자주 부러지는 몸을 가지고 있지만 진실한 사랑을 찾은 엄지공주의 이야기들 처럼 다큐멘터리를 잘 보지 않는 나조차도 알만한 프로이고 몇번인가 본 적도 있지만 자세히는 보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저려서 눈물이 계속 나와서 보고 있으면 통곡할 것만 같아서 보지 않았던 작품들이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책속에 들어 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아빠의 사랑을 그린 작품까지 들어 있어 처음 몇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내내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저자는 사랑과 전쟁피디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전쟁 속으로 뛰어 들어가 다큐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전쟁이라는 것은 비극이고 항상 그 결과는 이긴 사람들에게나 진 사람들에게나 좋음만을 남겨주지는 않는다. 하물며 지금 실제 총알이 휙휙 날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제 삼자라고는 하나 그조차도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곳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는 내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담아서 방송을 했다. 그 프로정신이 놀랍다. 그런 이야기들이 단지 다큐라는 이유로 해서 한번 방송이 되고 묻혀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보았던 사회고발적인 다른 다큐들이 몇개 기억에 남긴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의 건강을 위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어떠한 세상에 사는지 알기 위해서 보았던 프로그램들이라면 저자가 만든 프로들은 힘들고 아픈 사람들의 자신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랑이야기가 들어 있다. 또한 그것뿐 아니라 피디수첩에서 일할때의 이야기들도 들어있다. 자신들은 소위 말하는 특종을 잡기 위해서 어떻게 행해왔는지도 나와 있다. 청소년들 가운데서 혹시나 피디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딱히 나는 꼭 예능 피디만 할 거에요 라고 주장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그리고 그의 다큐로 인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 그 느낌보다 더 진한 감동을 받을 것이라고 권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큐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더라도 이 추운 겨울에 진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도록 권하고 싶다. 아픈 엄마를 둔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엄마한테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일곱살 난 그 아이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이 나이 먹도록 살아온 나도 엄마한테 잘해준게 없는데. 새삼 미안하고 엄마가 이때까지 살아주어서 정말 고맙다. 살아줘서 고마와요 엄마.

 

쇼팽 발라드 제4번

책을 읽으면서 여러 소재를 만나지만 음악이라는 것 만큼 약간은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없는 듯 하다. 음악이라는 것은 듣는 것이고 책이라는 것은 읽는 것인데 이 둘이 만나면 이상하게도 오묘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물론 책을 읽을때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그냥 조용한 것이 좋다. 각설하고 그런 효과를 가져오는 그만큼 음악을 주제로 쓰여진 글들도 많다.

 

'밤의 여왕'에서는 오페라를 소재로 해서 쓰여졌고 '배를 타라' 같은 경우에는 아예 음악학교를 배경으로 좀더 전문성있는 음악들을 그려내었다. 물론 책이 길어지면서 중간중간 철학에 관한 내용들이 나오기도 해서 음악과 철학 또한 떼어질수 없는 관계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한국책에서는 아마도 '희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남자주인공 직업이 라디오 피디였나 해서 그가 골라주는 음악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듣기도 했고 목록으로 만들어 저장해두기도 했었다. 나중에 다시 듣고 싶어질때를 기억하면서.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개인적으로는 '히든바흐'와 '모차르트 컨스피러시' 였는데 두 책 모두 정통적으로 음악을 소재로 해서 다루기는 했으나 스릴러와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도입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좀더 재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은 있었 다. 히든 바흐에서는 바흐의 숨겨진 악보를 찾아냄으로 인해서 미래를 예측할수 있는 능력을 그려내어서 이게 약간은판타지가 아닌가 하는 측면도 있지만 미스터리 판타지 라고 명명하는 것이 조금 더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재미로 따지자면 모차르트 컨스피러시를 따라 올 책이 없는 듯 하다. 음악을 가지고 - 물론 나중에 중세 기사단 얘기도 나오고는 하지만- 스릴러와 결헙시켜 재미도 버리지 않고 음악에 관한 것도 정확히 나타내 준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상상력에 존경을 표하는 바이기도 하다. 상상력에 자료조사가 덕붙여 져야 하겠지만. 그리고 가장 전문적으로 하자면 아마도 '레퀴엠'이라는 책일텐데 모차르트의 장송곡을 소재로 많은 이야기들을 그려내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쇼팽의 음악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많은 음악을 소재로 하는 책들이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쇼팽의 악보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일단은 가장 특이하다. 쇼팽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피아노 곡이 유명하고 그 피아노 곡들도 유명한 야상곡을 선두로 해서 대체로 잔잔한 편이다. 그래서 이게 과연 소재가 될까 하는 의아심도 있었지만 읽으면서 그 생각들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뒤로 갈수록 고조되는 이야기들은 쇼팽의 음악이 이렇게도 쓰일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쇼팽의 발라드 제4번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알려지지 않은 그 악보를 소재로 쇼팽의 비밀과 사랑에 대해서 피아니스트인 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책은 아니다. 움베르트 에코는 이 책에 대해서 현대의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며 음악과 쇼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음악으로 가득한 책에서 당혹감을 느낄수도 있다고 했다.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그래도 나는 클래식을 공부하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는데 그런 내가 읽어도 철학을 전공한 저자를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그렇다면 음악을, 적어도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더한 괴리감을 느낄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에코는 이렇게도 말했다. 앞부분에서 자신이 있는 곳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안정을 찾는다고 했다. 그 말에도 공감한다. 앞에서 정처없이 방황하며 이게 철학일까 음악일까 또는 역사일까 고민하던 사람들은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좀더 재미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 나조차도 그러했다. 이야기가 안정을 찾기 시작한 소설은 점점 재미도 붙는다. 음악과 이야기. 둘다 잡을수 있는 이야기.그것이 이 소설의 재미다. 더불어 철학적인 느낌도 받을수 있는 책. 그것이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