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뎀션
리뎀션... 무슨 뜻일까...영어 사전으로도 프랑스어 사전으로도 비슷한 뜻이 나온다. 구원 , 속죄. 무언가에 대한 또는 누군가에 대한 속죄를 의미하는 단어. 아무런 신경 쓰지 않고 읽었던 단어의 뜻을 뒤늦게야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니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한번에 이해가 되었다. 일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한 챕터씩 끊어 읽었고 마지막엔 달리고 싶어서 일부러 주말에 읽었으나 또 다른 방해요소들로 인하여 또 읽을만하면 잘리고 해서 그 느낌이 살지 않았다. 가장 핵심적인 하이라이트에 들어서는 몰입을 하긴 했지만 왠만하면 한 세시간 잡아놓고 한꺼번에 죽 달려 읽어야 제대로 된 느낌이 사는 책이다. 나중에 비스트와 더불어서 한꺼번에 쌓아놓고 다시 읽을 책 중 하나.
이 이야기의 저자는 두명, 익히 아는 비스트의 작가들이다. 일반적인 작가들이 아니라 그중의 한명이 전과자라는 사실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욱 생생한 현장감은 두드러지는 책이다. 비스트에서 성폭력에 시달린 딸을 대신하여 처단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제도인가 또는 없어져야 할 제도인가를 놓고 그것을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각기 대표자격으로 범인에 의해 딿은 아버지가 등장을 하고 그 반대의 입장으로는 사형자들을 관리하는 교도소장이 등장을 한다. 그들 둘은 한 여자를 사랑했던 사이이기도 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그들의 입장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6년전 미국에 있었던 사형수 존. 그리고 지금은 스웨덴에 있는 한 아들의 아버지인 존.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닮은 여자를 성추행하는 남자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그 이유로 체포당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부터 시작이었으니 그가 예전에 죽었어야 하는 사형수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나라간에 또한 자신이 주장하는 신념하에 강하게 대비가 된다.
스웨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에베트형사의 활약이 대단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솔직히 존이 너무도 쉽게 잡혀 버렸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그를 미국으로 송환 할것인가 말것인가에 관련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스벤이나 마리안나의 활약도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저 당사자인 존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 들여주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할수 있도록 거들어 주는 것 뿐. 이후 존이 미국으로 보내지고 나서는 더욱 할일이 없어진다. 그부분에 있어서는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사형제도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의 활약은 또 다른 이야기에서 기대를 해보록 할수 있겠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어지던 이야기는 현재로 돌아와 한주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한주 안에서 존은 잡히고 미국으로 송환을 당한다. 그리고 그 이후 결국 그는 사형을 당한다. 이야기의 반전은 거기서 시작이다. 과연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하던 그는 진실로 무죄인 것일까 그렇다면 그가 사랑하던 엘리자베스를 죽인 진범은 누구인것일까. 사형제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하루하루 날짜를 표시해가면서 살아가는 사형수처럼 요일이 나올때마다 조마조마한 느낌을 같이 느끼면서 읽게 된다. 존의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일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찬성파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한국에도 강력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더 강력해졌다. 성격에 나오는 것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까지는 아닐지라도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는 성폭력범이나 너무 심한 강력범죄의 범인들은 일벌백계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지만 실행되지 않고 있는지 꽤 오래되어 실질적으로는 사형제도가 유명무실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이런 범죄가 많아진 것이 아닐까.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사형수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진범이 아닐 경우라면 어떻게 하느냐 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한국의 경찰을 믿고 그들의 능력을 믿고 그들이 무고한 사람을 잡아 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또한 그들에게 사형이라는 선고를 내리기까지 고민했을 사법제도를 믿고 두번 다시 그들이 이 사회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강력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죄를 주장한 존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왠지 이 책을 생각하는 순간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나는 가네'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바람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그랬을까. 왜 이 노래가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작가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알고보니 예전에 읽었던 조드라는 책을 쓴 작가였다. '조드'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읽어서 조드가 초원에서의 보릿고개와 같은 개념이라는 것을 책을 읽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사실 그 책을 읽을때였나 부모님이 몽골로 여행을 다녀오셔서 한번은 더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책을 읽으면서는 칭,칭 칭기즈칸~ 뭐 요렇게 시작되는 노래가 생각났던 것 같기도 햇었는데 부모님이 여행을 다녀오신 후 정리했던 사진에는 완전 모래 바닥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푸르고 넓은 초원지대를 생각했었는데 푸른것은 없고 그냥 누런 모래만 가득한 사막을 연상시키는 그런 배경이랄까. 그런 곳에서도 듬성듬성 나 있는 풀이 있었고 그곳에 쳐져 있는 게르들. 그리고 그 속의 모습들에서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느낄수가 있었다.
소설이지만 그 소설을 통해서 몽골 사람들의 역사를 좀 알게 되었나 싶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역사 뿐 아니라 요즘의 상황들 그리고 픽션보다는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들을수 있다. 아마 '조드'를 읽은 사람이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볼 책이지만 그렇다고 꼭 읽어야 하는 필수성은 아니다. 왜 읽고 난 후가 더 좋으냐면 이 책의 뒷부분은 조드를 쓰게 된 계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창작노트라고 해서 몽골에서 조드라는 책이 탄생하게 된 계기와 그 책을 쓰게 된 배경이야기. 또한 그후에 이어지는 좌담까지. 책을 읽고 난 후에 이 책을 읽는다면 더 고개가 끄덕여지고 공감갈 내용들이 많다. 앞부분은 자신이 몽골을 여러번 다녀오면서 느끼게 된 이야기와 교수님들과 함께 몽골의 역사와 언어를 찾아서 떠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즉 이 책은 여행기와 잡화집의 결합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전 이 치열한 무력이라는 책을 통해서 좌담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한 주제로 토론을 하고 그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었는데 그 책에서의 주제가 좀 어려워서 대화자체도 어려웠다고 한다면 이 책에서의 좌담은 이미 내가 읽었던 책을 주제로 삼고 있기도 하고 또 익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니까 더 편하게 읽을수 있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나오는 사진들은 언뜻 보면 그냥 위는 하늘 밑은 땅. 이렇게 생각할수 있으나 그 사진들의 미묘한 차이점들을 찾아본다면 사진 한장한장이 얼마나 다른지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진을 보면서 느낀 생각은 몽골이라는 나라 자체가 정말 어마무지하게 넓다는 것이다. 그 땅을 잘 활용할수 있다면 좋을텐데 모래뿐인 땅.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삼 놀랍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요즘의 몽골 젊은이들은 해외로 많이들 나가는 추세라고도 한다. 열악한 땅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도를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그 땅이 잘 관리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크다. '조드'를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자세한 묘사가 있을쑤 있을가 그러면서 갘탄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그런 지역을 상상하기도 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상상했던 지역을 눈으로 직접 확힌할수가 있어서 반가왔다. 그리고 작가가 그만큼 노력을 들여서 썼기대문에 그책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언젠가는 한번쯤 직접 그 넓은 황야를 확인하고 싶기도 하다. 물론 모래를 막을 마스크는 필수겠지만 그래도 나도 말을 타고 드넓은 땅을 또가닥또가닥 달려보고 싶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아나키스트... 언젠가 영화제목으로도 나왔던 단어. 그렇지만 정확하게 문맥상 무엇을 말하는지 알수 없어서 뜻은? 그러면 그저 웅얼거리면 나만 아는 뜻으로 인식되었던 단어. 그 단어가 들어가고 그것의 고백.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찾아보게 되었다. 무정부주의자... 한국에서 쓰이기에는 일제치하에서 그들의 억압에 대항하며 독립을 갈망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었다.
이책은 스페인 사람이면서 내전을 겪고 프랑스로 탈출했다 세계 2차 대전을 겪게 되고 프랑코 독재정권까지 경험하게 되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가 원한 것은 오히려 정부가 없는 그런 무정부주의가 아니었을까. 주인공인 그가 처음부터 그걸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살아가면서 자신이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이 힘들어지고 자신에게만 꼭 가해지는 운명의 고리가 너무 꽉 눌러와서 그걸 탈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2010 만화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단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않을뻔 했다. 지은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계시던 양로원에서 아버지가 자살을 한후 도착한 양로원장의 편지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1일이 아니라 4일에 죽었기 때문에 사용로 34유로를 지불하라는 것. 2001년 죽음을 선택한 노인의 마지막을 꼭 이런식으로 처리해야 했을까.
작가는 비인간적인 관료주의라고 여기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쪽 입장에서는 시간에 따라서 가격을 측정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청구를 했어야 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그곳에서 자살을 한것도 서러운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은 헤아리지 못한채 그 결과 이 책이 나오게 되었으니 오히려 더 잘 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 책으로 아버지의 양로원 사용료는 지불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지은이가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서 쓴 아버지의 자서전격인 이야기다.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위인들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시대적인 상황이 그를 평범하게 살게 만들지 않았고 결국은 그의 아버지 즉 지은이의 할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시로 도망쳐 가고 그 이후의 삶은 시대가 만들어준 삶이라고 밖에 생각할수 없겠다. 그저 평범하고 싶었을 지도 모를 그의 아버지. 그때 당시는 모두가 그랬다고 얘기할수 밖에 없지만 참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잘 살고 싶었던 그의 의지가 군데 군데 묻어나는 것 같아 그의 삶이 꼭 우리 아버지들의 삶 같아서 가끔은 마음이 찡했다.
하늘로 날기 위해서 양로원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고 그들의 눈을 피해 결국 신발을 신지 못하고 날았던 그의 아버지. 그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겪었던 아니 겪을수 밖에 없었던 운명같은 그의 아버지의 삶을 쫒아서 따라 가다 보면 이미 60년전 비슷한 이야기를 겪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만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