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가족
그냥 조금 읽다가 다음에 마저 읽어야지 하고 집어든 책은 두께가 얇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술술 읽혀지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무라카미류의 작품들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니어도 이 책은 무거운 주제에 비해서 가독성은 있는 편이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는 '야행관람차'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조금은 덜 비극적인 이야기라고나 할까.
가족. 일인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세대에 가족이라는 말은 어쩌면 조만간 없어질지도 모를 단어 같기도 하다. 또 다른 말로는 식구라고도 한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 그래서 혈연가족은 아니지만 '도모미하숙집의 선물'에서 나오는 하숙생들처럼 오히려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끼리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더 가족같음을 누리고 있기도 한다.
많지도 않은 식구 네명. 아버지는 가족은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면서 집안의 규칙을 만들지만 영업직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기다려 저녁을 먹는 일은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커피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커피를 갈아서 내려서 만들지만 자식들은 그마저도 별로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나마 어느 정도 다 잘 자랐다고 생각 할 무렵인 대학교 2학년. 큰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다. 폭력성도 거세어서 부모를 마구 때리기까지 한다.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의 증상이다.
작가는 큰아들을 히키코모리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족의 해체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 또는 가족끼리 소통의 부재를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큰아들이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모든 대화는 쪽지로 하게 된다. 자신이 선택한 삶. 과연 아들은 자신의 방에서 나오게 될까. 자신이 스스로 원해서 박힌 이상 자신이 무언가 하고자 하는 원동력만 만들수 있다면 히키코모리는 해결될수 있는 문제라고 방향을 잡고 있다. 실제로 자신이 세상과 담쌓고 창문에까지 여려겹으로 종이를 붙였던 큰 아들은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자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이 가족은 각자 저마다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의 문제를 가족끼리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가 팔려버릴 지경이고 어머니는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러 여기저기 상담을 받으러 다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목수에게 마음이 가서 데이트를 하고 아들은 히키코모리이며 딸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각자 자신만 알뿐 다른 가족들은 그 속내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단지 혈연관계여서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음을 나누고 속 내용을 나눌수 있는 것. 그것이 가정인 것이다. 아들이 자신의 문제를 미리 부모와 의논했다면 그는 방에 갇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회사문제를 미리 아내와 상의 했더라면 더 좋은 상태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모든 일이 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결이 나고 그후에야 이 가족은 모이게 된다. 저마다 뿔뿔이 헤어졌지만 오히려 그들은 더 가족같음을 느끼게 된다. 과연 지금 시대에서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울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면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두가지로 분류하고 싶다. 해리포터처럼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마법과도 같은, 정말 말 그대로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그 외에 혹시라도 나중에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울이라는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후자에 해당하는 편인데 중국이 대기가 좋지 않아서 스모그가 일상이 되어 버렸고 부연 안개와도 같은 그런 스모그가 깔린 거리를 보면서 이 세상이 언젠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다니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책 또한 그런 부분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한다. 대기권에 독소가 퍼져 사일로라는 특별한 공간속에서만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 바깥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으면 단지 아주 작은 창문을 통해서만 볼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밖으로 향하는 그 창문을 닦기 위해서 '청소'라는 형벌을 통해서 죄를 지은 사람을 내보내어 결국은 그 독소에 죽게 만든다. 이런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어떤 권력이 생기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얼마 전 나온 '설국열차'라는 영화속에서도 갇혀진 한계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계급이 나누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더 나은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싸우는 내용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굳이 영화를 예로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지구상에서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들은 다들 저마다 자신이 권력을 잡겠다고'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자신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좁지도 않은 한 나라에서조차 그럴진대 작은 좁은 공간에서는 더욱더 그럴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책은 총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홀스턴이라는 보안관의 입장에서 시작하고 있는 책은 2부 '가늠하다'라는 제목으로 잔스라는 시장과 만스라는 부보안관이 새로운 보안관을 찾으러 여행 아닌 여행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3부작에서는 보안관으로 선택된 줄스의 입장에서 이 사일로의 비밀이 풀려가는 그러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4부에서는 완전히 풀어졌나 하면 마지막 5부작에서 다시 묶이는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이 이야기가 각각 단편처럼 엮어 있으면서도 저다마의 유기적인 관계를 구성하고 있어서 한 챕터가 끝나면 다시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보면서 또한 앞의 이야기가 이 이야기에서 어떻게 풀려나가는지를 살펴볼수 있는 그런 궁금증을 유발하는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처음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훌스턴의 죽음으로 인해 그 다음이야기가 풀려가고 두번째로 등장한 잔스와 만스가 또 죽음을 맞이하며 그 모든일이 하나의 사건으로 엮여서 한편의 스릴러를 풀어나가야 하는 그러한 장르소설의 느낌도 받을수가 있다. 단지 그저 sf소설이라고 여기기에는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 있는 느낌이라 지루할 새가 없이 느낄수가 었다. 하나의 사건이 또 다른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속에서 또 다른 주인공이 생기게 되고 그 주인공으로 인하여 또 다른 상황이 생겨나고. 이런 특성 때문에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책을 영화화 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한 이런 숨막히게 바쁘게 엮인 상황 덕분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었을수도 있겠다. 어떤 책은 아마존이나 뉴욕타임스에서는 베스트에 오르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 인기를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낼수 있을 것 같다. 번역의 도움이랄까 헷갈리지 않는 등장인물과 자세한 묘사로 인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장면이 또는 이 배경이 어떠할지 상상을 자유롭게 하수 있는 것이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의 장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사일로라는 좁은 공간속에서도 계급사회는 존재한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서 현실을 비판하는 관점을 보여줄수도 있고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꿋꿋이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볼때 얼마전 읽은 '리치드'의 3부작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실제로 이 세상이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일로 같은 집단 거주체제가 될지 또는 집에서 개개인의 생활을 누리면서 살고 밖으로는 아무도 다니지 않을지도 모르겠고. 그렇지만 이런 책들로 인해서 우리는 마음껏 상상을 해볼수가 있고 그럼으로 인해 좀더 현실의 답답함을 잊어볼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가 한다.
개인적으로 2부에서 잔스와 만스가 보안관 후보자들을 찾겠다고 직접 사일로를 순회하러 나설때 그들은 줄스를 만나러 밑으로 내려간다. 100층이 넘는 사일로의 공간을 생각할때 한층 한층 걸어가는 그들의 상황을 보면서 한가지 의문스러운것은 왜 지금도 일반시 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사일로 공간에서는 만들지 않았을까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있었다면 그들은 굳이 물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계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텐데. 하긴 그랬다면 작가가 구성한 2부를 완전히 구성할수는 없었을수도 있겠다. 그리고 사일로의 공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밑으로 갈수록 숫자가 낮아지지 않는다는 기억해야 한다. 최고층들이 사는 높은 곳이 1층이고 내려갈수록 숫자가 높아지는 것이다. 처음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숫자가 나오는 장면이 헷갈리긴 했지만 그런 헷갈림 조차도 즐거움으로 읽을수 있는 느낌의 책이다.
도살자들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왜 그런지를 알수 있겠다. 원제를 읽을수도 없지만 굳이 읽지 않아도 왜 그런지 알겠다. 그리고 그 제목의 하위 버전을 찾으라면 패거리들이 어울린다는 것도 알겠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왜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친구를 잘 만나야 하는지도 알겠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딱 맞는 책 한권이다.
읽어가면서 언젠가 몇년전이었나 재벌그룹의 아들이었나 회장이었나 하는 사람이 자기 밑의 사람을 때려서 구속당한 기사가 생각났다. 한대당 5천만원이었대나 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얼핏 기억나는데 얼마나 돈이 많으면 그럴까 라는 생각보다도 사람을 돈을 주고 때릴수 있다고 생각한 그 발상자체가 기가 막혔다. 현실에서도 이미 있는 일인데 그게 소설에 쓰여진다고 뭐 그리 놀라우랴. 그 역순이 일어났을때 놀라운 사실이 되는 것인데 요즘 이 세상은 소설속보다도 더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판타지 소설이 더 많이 나오는 지도 모르겠다.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을 상상하자 이런 취지로 말이다.
할런코벤과 마이클 코넬리의 미국 소설을 돌아서 게이고와 미미여사의 일본소설을 돌아 피에르 르메트르의 프랑스 소설을 지나 요네스뵈의 노르웨이 소설을 넘어서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독일소설을 경험하고 이제는 덴마크 소설이다. 전작을 읽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평이 꽤 좋았기에 궁금했다. '특별 수사반 Q'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인 이 이야기는 전작에서 나왔던 그 인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전작에서 정치인 메레테 륑고르의 실종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한 코펜하겐 경찰서의 미결 사건 전담 '특별 수사반 Q'의 명콤비 칼 뫼르크와 아사드가 주인공이고 이 외에 로즈라는 새로운 인물이 가세하여 삼인조가 풀어나가는 콜드 케이스 즉 미제사건이다. 정확히 말하면 종결사건인데 다시 파헤쳐서 미제사건과 연결고리를 찾는 내용이라고 할까.
이미 결론이 났고 그 범인이 복역을 하고 얼마 후 풀려나는 전혀 다시 볼 일 없는 사건인데 그 사건과 관련된 파일들이 칼의 책상위에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파일. 윗선에서는 이미 종결난 사건을 다시 뒤집는다고 잔소리를 하고 지금 새로 일어나는 사건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경찰서 내 상황으로써는 충분히 이해할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계속 되자 칼은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사건 당시의 현장으로 출동해서 이미 다 거두어진 증거들이 그날의 상황과 그대로 재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증거로 인해서 그는 경찰서에서 그때 당시 피해자의 남자친구였던 요한을 만나고 의심스러운 점을 찾아내기 시작하기에 이른다.
그의 눈에 띄기 시작한 사람 또한 요한이 의심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이 사회에서 한 자리씩 하고 있는 거물급들이다. 또한 그들의 가족 또한 중요한 사람들이니 섣불리 접근하기가 어렵다. 아마 그들도 자신들의 배경을 믿고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았을까. 현실의 재벌집 자식들처럼 말이다. 그들이 잘나가는 부모를 두지 않았다면, 부자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이 행동하는 것을 막아 줄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없이 마음대로 행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질지상주의가 빚어낸 폐해라고나 할까. 돈이면 모든 것을 다 자기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그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있었을테니 굳이 그들을 탓하기보다는 그들을 그렇게 키운 부모를 탓해야 하는 것일래나.
의심이 가는 인물을 처음부터 드러내 놓고 있다. 사건이 저질러 지고 그 누군가를 찾아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명확히 용의자를, 용의자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을 엮을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미 종결된 사건이고 범인은 잡혀 있고 그들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게 딱히 없는 상황에서 칼은 어떻게 그들을 잡을수 있을까. 인과응보라는 말답게 그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긴 하지만 칼의 활약이 확 드러나는 면은 아니어서 조금 아쉽긴 했다. 반면에 아사드의 매력이 한층 더 돋보이고 로즈의 쾌할함이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고 있다. 역시 전작의 흥행은 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특별수사반의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지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